이렇게 삼권분립 정신이 극도로 문란해진 시점이기 때문에 몽테스키외가 원래 상정했던 삼권분립 정신은 어떤 것인가를 다시금 검토해 보는 것도 의의가 있겠다 싶습니다. 몽테스키외는 지금부터 3백 년 전, 우리나라로 치면 숙종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살앗던 기간이 영조시대 때까지 연결됩니다. 같은 시대의 우리나라 형편과 비교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권분립 정신이 이때에 이론적으로 정리됐던 것은 그 시대 상황이 그것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지 않고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정신, 도는 이 이론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은 과학이 크게 발전해서 예전에는 성서에 뭐가 씌어져 있는지를 가지고 모든 일을 판단하던 것이 과학이론에 따라, 이성에 따라서 판단하는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뉴튼(Isaac Newton)이 바로 이 시대의 사람이고, 피뢰침을 만든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도 바로 이 시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유럽에서는 귀부인들이 현미경 한 두 개쯤을, 요즘 액세서리 가지고 있듯이 가지고 있는 게 유행이랬습니다. 그래야지 교양녀로 통하는 시대풍속이랬습니다. 그렇게 과학이 발달했고, 중세시대 때 모든 것을 종교적으로만 해석하던 것과는 다른 풍토가 정착하던 무렵이랬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잉카문명이나 마야문명을 일으켰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수탈해 엄청난 금을 가져가는 바람에 약 반 세기 사이에 구라파의 물가가 2배 내지 3배 뛰었더랬습니다. 돈이 많아지면 물가가 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이와 같은 경제적 번영 위에서 투기도 대단히 성행했습니다. 유명한 애기입니다만 미시시피 회사에서는 미국에 굉장한 금광이 있다고 거짓말을 퍼뜨려서 주식을 내다 팔아 하루아침에 사람들을 떼부자로 만들엇다가 하루아침에 전부 알거지로 만들었던 대투기도 이 시대에 유행했던 겁니다.

 

 또한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시대 이래로 권력을 누려오던 계층, 성직자와 귀족들이 마지막 발버둥을 치던 무렵이랬습니다. 몽테스키외 자신도 귀족 출신이기 때문에 고등법원 원장 노릇을 했습니다만 인구로 따지면 2%도 안되는 귀족들이 프랑스 전체 농토의 약 4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금을 하나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혹 정치하는 사람 또는 행정하는 사람 중에 이래 가지고는 틀림없이 혁명이 일어날 테니까 귀족들한테도 세금을 거두자고 하면 귀족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재상 또는 행정가들을 쫓아내던 바로 그 무렵입니다.

 

 

 또한 외국의 문물도 여러 가지가 도입되고 또 새로운 지식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상한 유행들이 많았습니다. 가령 당시 프랑스에서는 중국식으로 정원을 꾸미는 게 대유행이였습니다. 성도덕은 독점한다는 것이 마치 공공복리에 반하는 행위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로 도덕 수준이 저하돼 있던 시대 상황이였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어떻게 이것을 개선할 것인가 하는 명제입니다. 그건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상황이 변하고 뭔가 주도권을 행사해야 될 새로운 계층이 등장할 적에 반드시 일어나는 움직임입니다. 이와 같은 요청에 응해서 몇몇 사람들이 해답을 내놓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몽테스키외이고, 그외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볼테르(Voltaire)나 루소(Jean j.Rousseau)같은 사람도 이와 같은 요청에 응해서 여러 가지 해답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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