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하는 이별은 낙화처럼 아팠다.

 

 잊을 수 없는 오년 전 그 봄, 스물한 살 엄마 눈엔 미완성인 아들을 나라의 부름에 보내는 그날! 또래들 사이에 유독 왜소해 보이는 너를 낯선 곳에 떼놓고 와야 했던 그날, 탯줄 끊은 지 오래건만 엄마는 너를 스물 한 해 동안 자궁 속에 품고 있었는지, 생명줄을 두고 돌아서는 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뱃속에서부터 세상 밖으로 나와 스물 한 해 동안 아들 엄마 이별연습 한번 없이 막연한 이별 앞에 겉으로 태연한 척, 억지웃음 보였지만 눈에는 눈물과 가슴엔 먹먹함이...

 

 입대 후 너와의 첫 면회를 손꼽아 기다리며 사랑하는 연인과의 만남처럼 설렘으로 몇 밤을 보내고 드디어 첫 면회 가는 날 새벽부터 이것저것 아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며 간식 하나라도 빠트릴까봐 자다가도 생각나면 챙겨 잠도 설친 채 아들 만나러 가는길...

 

 입대 하는 그날 그 길을 가고 있으면서 첫 면회 가는 그날은 창밖 꽃도 나무도 손 흔들며 환영하는 듯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만감이 교차할 쯤 연병장에 도착해 똑같은 군복 속에서 걸어오는 너의 모습 잊을 수가 없구나. 마른 체격에 헐렁한 군복, 까칠한 모습, 훈련으로 쉰 목소리, 널 껴안으며 느껴지는 너의 가늘어진 허리.

 

 부모님 면회 오는 날은 아침도 안 먹고 기다린다는 훈련병이라던데, 평소 얼큰한 음식을 좋아해 준비한 매운탕을 버너에 끓이고, 이것저것 먹기를 권해봤지만, 긴장감 때문인지 먹는 둥 마는둥 했던 너였어.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잠시 후 있을 헤어짐의 부담 때문이었겠지.

 

 대한민국 아들 낳은 부모만이 겪어야 하는 생이별 앞에, TV 뉴스를 보면 잘났다는 부모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아들 군대도 안보내는데 못난 부모라 내 아들 생고생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자대 배치를 같은 지역에 배정받아 얼마나 천만다행이었던지 그 후 근무 특성상 매주 한번 면회는 가능했기에, 우리 부부는 한 동안 토요일 마다 여행가는 짐 챙기듯 아들 면회를 즐기기도 했다.

 

 솜사탕같이 부푼 기대 안고 나선 아들 만나러 가는 그 길!

 

 면회 후 돌아서는 마음과 외박 후 귀대하는 마음으로 그 때는 매번 눈물 바람이었다.

 

 매번 덩그러니 아들 혼자 두고 돌아오는 발걸음에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아마도 그 옛날 부모님께서 딸 시집보내는 마음 아니었을까? 그때처럼 아들과 엄마가 애틋한 적 없었으니까 말이다.

 

 늘 아쉬움의 짧은 면히 시간, 안타까움만 안고 돌아서야 했던 아들과 엄마.

 

 무언의 "사랑"을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언제 우리가 그렇게 애틋한 적이 있었던가?

 

 만남, 헤어짐, 만남, 헤어짐을 수 없이 반복하면서 아들은 군복이 어색하지 않을 쯤, 몸도 마음도 단단하고 의젓한 사나이로 변해 갔다. 가슴도 어깨도 넓어진 만큼, 마음도 넉넉해진 대한민국 공군 병장으로 무탈하게 제대했지.

 

 며칠 전 예비군 훈련으로 오랜만에 군복 입은 너의 모습을 보며 오 년 전 너의 군복무 시절, 그 때 그 봄날 서툰 이별 연습이 한 편의 추억으로 다가왔다.

 

 제대 후 지금은 대학 4학년 취업 준비로 밤낮 없이 공부하는 너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피고한지, 힘들지?" 물으면 "괜찮아요! 친구들도 다들 열심히 하는데요"라며 "군대도 갔다 왔는데요" 한다. 그 한마디에 엄마는 아들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 주변에 아들을 군대 보내야 하는 엄마가 있으면 "걱정하지 마요. 우리 아들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젓하게 잘 해낼 것이다."라고 다독이며 나의 경험을 전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이며 아무나 가고 싶다고 가는 곳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큰 소리 친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하늘, 땅, 바다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군복무 하는 우리 아들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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